
‘권력‘ ’지식‘ ’담론‘은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자(본인은 스스로를 고고학자라 칭하는) 미셸 푸코의 주된 철학관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키워드들이다. 20세기의 니체라 불리는 이 학자는 그동안 철학자들이 탐독하지 않은 여러 관념들을 탐독해간다. 대표적으로 『성의 역사』 『광기의 역사』는 성sex와 광인 혹은 광기craziness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설복되고 그것글이 배제된 과정과 역사를 ‘고고학적’으로 탐구한다.
이러한 그의 탐구 방법은 ‘공간’이라는 키워드를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하게 만드는데, 즉 푸코는 ‘헤테로토피아’라 불리는 ‘내재적 외부’를 떠맡는 여러 요소들에 대한 탐독을 이어나갔다. 다시 말해 ‘정상’을 가능하게 하는 ‘비정상’들을 공간성과 관련하여 탐독해나갔다는 것이다.
푸코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라는 철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권력에의 의지’로 전화시키기도 하는데, 이는 다시 말해 모든 관계에는 권력이 행해지고 있으며 ‘권력 밖의 권력은 존재하지 않’음을 표명한다.
이렇듯 굉장히 다방면 편재하는 푸코의 철학관을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생명정치’라는 큰 대단원으로 묶일 수 있다.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는 권력의 진화 과정을, 즉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에게 권력과 정치를 행하는 과정의 역사를 기술해가는데 이 글에선 그 과정이 어떻게 진화하여 ‘생명정치’까지 도달하였는지, 더 나아가 ‘생명정치’란 무엇이며 그것이 21세기 현재 어떤 양태로 사회 속에 자리잡고 있는지 개괄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_주권권력

권력의 최초 형태이다. 푸코는 권력이 작동하기 위해선 그에 해당하는 ‘지식’이 필요하다 기술한다. 주권 권력은 ‘고통에 대한 지식’을 필요로 하며 고통으로 피지배계급을 복종시키는 방법론들이 이에 속하는데, 이는 고대와 중세에 편재하는 대표적인 양태로 ‘공개처형’ ‘육체적 고문’ ‘사형’ 등 타인의 육체과 생명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특히 이는 ‘공개적’으로 행해졌는데, 보통 반체제적인 혹은 반국가적인 인물의 공개처형을 통해 이를 바라보는 타인에 대해 공포심을 심어주고 복종하도록 만드는 정치 기술이다.
_규율권력

권력은 효율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허나 고대와 중세에 행해졌던 ‘주권권력’은 규율권력에 비해 정치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 예컨대 반란자의 공개처형은 역설적으로 타인에게 영웅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가령, 반체제적인 인물의 공개처형을 바라보며 주권권력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인물을 영웅화 시키거나 혁명화시킨다는 것이 정치적 효율성의 감소를 의미하고 공개적 처형이나 고문은 그러한 ‘행사’를 감당하는 비용측면에서 또한 경제적 효율성을 감소시킨다.
그렇게 주권권력은 규율권력으로 진화한다 푸코는 공리주의 철학자 제레미 벤담의 ‘판옵티콘’개념을 가져오는데, ‘판옵티콘‘이란 중앙에서 내려다보는 당시 교도소의 형태 상 교도소 주변부에 있는 죄수들을 감시자들이 내려다보긴 쉽지만 교도소 중앙에 있는 죄수들을 내려다보긴 힘들다. 이를 죄수 입장에서 다르게 적용하면 중앙의 죄수들은 언제나 ‘감시자들이 우릴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라는 압박을 지니게 되며 스스로의 신체와 정신을 규율하는 ‘자기 규율’적 양태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규율권력이란 ‘자기 신체를 스스로 규율하게 하는 권력’이다. 외부의 감시자나 지배계급은 죄수들이나 피지배계급에게 일정량의 정신적 압박만 가하면 되는 것이다. 푸코는 현대 컴퓨터망과 데이터들이 마치 죄수들을 감시하듯 개인의 일상 전반부에 비존재적 압박을 가하며 개인을 통제하고 규율화한다 언급한다.
_생명정치(권력)

권력의 최종적 진화 형태는 ‘생명정치’로 이어진다. 이는 ‘인구 집단 전체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행해지는 권력을 의미하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생명에 분계선’을 긋는 정치경제적 행위이다. 즉, ‘살만한 가치가 있는 생명에게만 애도’를 표함으로써 이는 ’인종주의‘ ‘민족주의’와 함께 성행한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가장 성행하는 형태의 권력망으로 특히 가장 최근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사태를 바라보며 생명정치의 구현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호주와 캐나다가 2019년을 기점으로 ’자국민우대정책‘을 펼치는가 하면 (기후)난민 문제 또한 생명정치의 연장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선 전세계가 국경을 봉쇄하고 다시 자국민우대정책을, 그리고 민족주의정책을 펼치며 이에 대항하는 ’Stop Asian Hates'나 ‘Black Lives Matter'와도 같은 사회운동이 성행하기도 하였다.
생명정치는 인구집단 전체를 관리하거나 인간 개인의 삶 전체를 관리한다. 주권권력과 가장 비교되는 부분은 주권권력의 경우 살게 내버려두지만 죽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가령 복종만 잘 한다면 죽게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나 생명정치는 살게 내버려두지만 역으로 또한 죽게 내버려두는 형태로 이는 어쩌면 현대 사회에 성행하는 ’핵개인주의‘의 슬로건과 가장 닮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