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8.1 (1992.10.17 개봉)
- 감독
- 데이비드 린치
- 출연
- 카일 맥라클란, 이사벨라 로셀리니, 데니스 호퍼, 로라 던, 호프 레인지, 딘 스톡웰, 조지 딕커슨, 프리실라 포인터, 프란시스 베이, 브래드 도리프, 잭 낸스
1992년 개봉한 영화 '블루 벨벳Blue Velvet'은 데이빗 린치David Lynch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컬트 명작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 다른 그의 영화 중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와 함께 '50~60년대의 미국과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주제를 공유하고, 꿈을 통한 본인의 내면과의 대면, 그리고 고통스러운 사랑과 삶이라는 주제 또한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린치 감독 영화의 유사성의 연장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람들. 린치는 사람들이 저마다 품고 있는 열망desire을 극대화시켜 '귀 속 세계'에 집어넣는다.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묘사, 지나친 열정, 살인과 협박 등의 선정적인 주제들을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큰 틀로 포용하였고, 이 이상한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로 '잘린 사람의 귀'를 사용한 것 또한 눈여겨 볼 만한 장치이다.
주인공 '제프리'는 어느날 길을 걷다 개미떼들이 득실거리는 잘린 사람의 귀를 잔디밭에서 발견한다. 살인 사건에 연류된 제프리는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직접 몸을 던지고, 도로시라는 여인의 집에 숨어들어가며 이상한 나라로의 모험을 떠나게 된다.
_삼원색의 사용
린치는 색들을 사용하여관객들에게 앞으로 닥쳐올 장면과 상황을 예고한다. 그 중 '블루 벨벳'을 위해 린치가 채택한 색은 바로 모든 색들의 가장 기본이 되는 색인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이다. 이 세 가지의 색상은 각각 단 한 가지의 심볼로만 연결되어 있지 않다. 일반적으로 빨간색이 상징하는 것은 '사랑', 그리고 파란색이 상징하는 것은 '우울' 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이러한 관념과 더불어 각각 추가적인 상징적 요소들이 더해진다.
영화 첫 시작 장면에 배치된 빨간색 장미, 빨간색 소방차, 빨간색의 'STOP' 사인, 결정적으로제프리가 모는 빨간색 자동차, 그리고 영화 전체적으로 등장하는 빨간색 커튼과 레드 벨벳 카페트. 이는 위험과 공포가 우리 사회와 삶에 가장 가깝게 근접하여 있으며 언제 어디선가 의도치 않게 마주하게 될 것이라는 불안과 공포의 우연성을 암시한다.
영화 속 가장 매력적인 색으로 등장하는 파란색. 이는 암울함과 우울함의 대명사이다. 허나 영화 속 블루 벨벳은 '안정감을 주는 색'으로 선택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블루 벨벳이 선사하는 안정감은 자의적인 선의가 아닌 타의적인 선의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블루 벨벳을 입고 '파란색의 여인'으로 불리는 도로시는 '파란색'이 나타내는 심볼리즘의 관습적이고 대표적인 '우울감'을 상징하지만, 반대로 프랭크에게 그녀의 블루 벨벳은 '안정감'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노란색은 영화 속 '순수한 사랑'을 상징한다. 영화 초반부 제프리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병문안을 갔을 때 병원의 커튼이 노란색이었다는 점과 집안의 소품들이 노란빛을 띄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엔딩 부분에 캐릭터들의 의상 또한 노란빛을 하고 있는 것, 결정적으로 첫 번째 장미 등장 부분과 빨간색 소방차가 등장하는 장면을 엔딩에서 다시 한 번 보여주는데 여기서 '노란색 장미'로 대체되어 등장한다. 빨간색의 소품들을 배제하지 않았으므로 린치는 '언제나 위험은 우리와 근접해있다'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남기기도 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안정'과 '사랑'이라는 맹아를 찾은 것이다.
_인간의 다섯가지 감각, 그리고 린치가 제시한 여섯번째 감각
눈sight, 코smell, 입taste, 귀hearing, 손touch. 이는 인간이지니고 있는 대표적인 다섯 가지 센서이다. 우리는 이 기관들을 통해 모든 감각을 겪고 감정을 느끼며 대상들에 시달린다. 영화는 이 다섯 가지의 컨셉을 굉장히 잘 활용하고 있다.
도로시와 프랭크의 충격적이고 기괴한 섹스를 지켜 본 제프리의 눈sight, 프렝크의 산소 호흡기smell, 프랭크가 입 안에 가득 머금은 도로시의 블루 벨벳 로브taste, 모든 폭력을 상징하는 행동touch, 현실과 꿈을 연결해주는 귀hearing, 그리고 마지막으로 린치는 여섯번째 감각을 제시한다. 바로 꿈dreaming이다. 앞서 언급한 다섯가지의 감관들을 여섯번째 감관인 꿈의 지배 하에 놓고 꿈 속에서 각 감관들의 대상들에 대한 내적 탐구 활동으로 이어지는 서사를 지니며 이론과 실천 즉, 관념과현실을 오가는데, 꿈에서 깨어나 마주한 마지막 감정은 바로 '순수한 사랑' 이었다.
그러니까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블루 벨벳'은 제프리가 자신의 내적 탐구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찾는 개인적인 사랑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_어둠이 찾아오면, 꿈 속으로
앞서 언급한 삼원색 중 빨간색은 내면 속 또 다른 자아와 외적인 자아의 해리(분계)를 표현하는데에도 사용되었다. 도로시의 집 안 커튼이 빨간색인 것과 제프리와 샌디가 둘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눴던 바의 간판 또한 빨간색이었으며, 그 바의 벽면은 파란색이었지만 커튼은 빨간색이었다.
캐릭터들의 자아 분리-이중자아- 설정은 후반부의 프랭크가 제프리에게 건네는 대사에서 명확해진다. 프랭크는 제프리의 이중자아이고 도로시는 샌디의 이중자아인 셈이다. - 도로시는 Deep River Apt라는 곳에서 어둠 속에 살아가지만 샌디는 첫 등장에서부터 어둠속에서 나온다. 블루 벨벳에 대한 프랭크의 강박적인 집착과 도로시에 대한 미스터리한 제프리의 집착은 자아의 해리 현상을 가장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중자아 아젠다를 조금 더 쉽게 접근해보기 위해 영화의 ost로 사용된 로이 올비슨Roy Orbison의 'In Dreams'가사 중 일부를 보자.
but just before the dawn
새벽이 밝아오기 전에
I awake and find you gone
난 잠에서 깨어나 네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I can't helpt it, I can't help it
어쩔 수 없어
If I cry
아무리 울어봐도
I remember that you said goodbye
네가 건냈던 마지막 작별 인사가 기억 나
이는 '도로시-프랭크'의 관계에 대한 힌트이기도 하지만 '제프리-도로시'에 대한 힌트이기도 하다. 도로시는 제프리의 꿈속에만 존재하는 여인이었다는 것으로, 그리고 앞서 설명했던 '도로시-어둠/샌디-빛'이라는 상관관계 속에서 꿈은 도로시를 뜻하고 새벽녘은 샌디를 지목한다. 귀를 통해 들어간 이상한 나라는 결국 다섯가지 감관들을 일깨우기 위한 제프리의 모험이었고, 자신의 어두운 내면(프랭크)과 대면하기 위한 내적 투쟁이었던 것이다.
_It's dark now
I close my eyes then I drift away
난 눈을 감고 그 속으로 빨려들어갔지
Into the magic night
마법같은 밤으로
I softly say a silent prayer
그러고는 나지막하게 기도하지
Like dreamers do
몽상가들처럼 말이야
Then I fall asleep to dream my dreams of you
그러곤 네 꿈을 꾸기 위해 잠을 청해
In dreams I walk with you
꿈 속에서 난 너와 거닐고
In dreams I talk to you
꿈 속에서 난 네게 말도 붙이고
In dreams you're mine all of the time
꿈 속에서 넌 온전히 나만의것이야
We're together in dreams, in dreams
꿈 속에서 우린 함께야
-'In Dreams' by Roy Orbison
'블루 벨벳'하면 대표적으로떠오르는 곡 중 하나가 바로 로이 올비슨의 'In Dreams'이다. 영화 속에서는 'Candy-Coloured Clown'이라고 불리며 두 번 씩이나 재생된 곡인 만큼 관객들의 뇌리에 가장 깊이 박혀 있을 것이다. - 여담이지만 올비슨은 자신의 곡이 해당 영화에 삽입되는 것을 싫어했다 한다.
영화는 '드림 로직Dream Logic'을 따른다.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흐트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한다. 대표적인 꿈에 대한 클리셰로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아무런 설명 조차 듣지 않았는데도 알고 있는 경우, 그런 역할을 '샌디'라는 캐릭터가 수행한다. 우선 제프리가 꿈을 꾸고 있음은 '잘린 귀'가 클로즈업 되면서부터 '이 장면부터는 관념의 영역'임을 알 수 있지만 꿈과현실의 경계가 굉장히 모호하다. - 이는 또한 린치 감독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하지만 샌디는 어둠 속에서 등장하여 제프리에게 "귀를 찾은 사람이 너야?" 라며 말을 건넨다. 제프리는 샌디에게 "그걸 어떻게 알았어?"라고 반문하고, 샌디는 이어 "그냥 알아. 그게 다일 뿐이야."라고 답하며제프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화가 꿈 속의 사태임을 암시하고 있다.
도로시는 어둠이 깔렸을 때 블루 벨벳을 입는다. 프랭크만을 위해서. 도로시는 프랭크, 어둠속에서 이 둘 만의 기괴한 섹스는 모든 불이 꺼지고 도로시가 촛불을 밝히면 시작된다. 모든 불빛들을 잠재운다. "반 고흐를 위해, 섹스를 위해". 그리고 어둠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프랭크는 자기중심적인 가부장제의 표본이다. 권력과 힘을 쥐고 도로시의 남편과 아들을 납치하여 도로시를 학대한다. 하지만 그는 불이 꺼지고 어둠이 지배한 도로시의 앞에서 만큼은 섹스를 갈망하는 아기일 뿐이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그녀의 블루 벨벳은 밤하늘에 별이 수놓인 듯 하고, 그녀의 자궁으로 돌아가려는 듯한 프랭크의 기괴한 집착과 성욕을 위해 반짝이는 블루 벨벳은 존재하며, 그의 꿈은 존재한다.
_모든것을 포용하는 사랑 속으로
sometimes a wind blows
언뜻 바람이 불어오면
and you and I float in love
너와 난 사랑을 나누며 바람에 몸을 맡기지
and kiss forever
영원한 입맞춤을 나눠
in a darkness
어둠 속에서
and the mysteries of love come clear
그러면 사랑의 신비함은 명확해져
and dance in light
그리곤 빛 속에서 춤을 추지
in you, in me
네 품에서, 내 품에서
and show that we are love
그게 바로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증거야
-'Mysteries of Love' by Julee Cruise
영화의 마지막 엔딩은 제프리의 귀를 포커스하며 낮잠에서 깨어난 제프리를 비추며 줄리 크루즈의 이 곡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더 이상 잔디밭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벌레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개똥지빠귀가 입에 벌레를 물고 제프리네 집 마당으로 찾아오고, 샌디는 개똥지빠귀가 사랑을 의미한다 말한다.
프랭크 일당을 비롯한 모든 폭력과 어둠을 뜻했던 영화 속의 벌레, 그리고 그 벌레를 물고 날아온 개똥지빠귀. 이는 진정한사랑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포용한다 설복한다. 제프리는 꿈에서 깨고 도로시 또한 납치된 아들과 남편과 재회하여 제프리로부터 탈락하게 된다. 결국 제프리와 샌디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영화는 나름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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