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점
- 8.8 (2021.12.08 개봉)
- 감독
- 아담 맥케이
- 출연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제니퍼 로렌스, 메릴 스트립, 케이트 블란쳇, 롭 모건, 조나 힐, 마크 라이런스, 타일러 페리, 티모시 샬라메, 론 펄만, 아리아나 그란데, 키드 커디, 히메쉬 파텔, 멜라니 린스키, 마이클 치클리스, 토머 시슬리, 폴 가일포일, 로버트 조이
인류는 홀로세를 지나 인신세Anthropocene로 진입하였다. 인류의 활동 반경이 지구 환경과 역사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인신세의 등장은 산업혁명과 함께 발생하여 맑스주의자들은 흔히 '자본주의 인신세'라 칭하기도 하며 이러한 관점은 현재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 사회 속 우리의 위치를 파악해보자면 너무나도 타당해 보인다.
_한계점을 넘은 자본주의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된 후 세계는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물결에 탑승한다. '임금 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의 척도가 자본과 화폐의 기본적 조건으로 충족되며 새로운 계급론의 양태, 즉 '노동자'와 '비노동자', 를 낳고 이는 자본주의가 성숙해짐에 따라 다시 '소외된 노동자'와 '노동자'로 분계된다.
자본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표지로 한 부르주아들의 지배적 이념을 전파한다. 다시 말해 '프랑스 인권 선언'을 통해 정초한 '인간은 선천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지닌다'라는 법인의 등장은 구체성이 추상성으로 합일되며 '추상적 지배'의 시공간이 펼쳐짐을 암시하는 것이다. 가령 중세 봉건제 사회 속 농노는 지주에게 '인격적 지배'를 받았지만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한 명의 법인으로서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며 평등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비인격적 지배'를 받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세계화를 필요로 한다. 이는 산업혁명과 함께 피어난 사회태이기에 필수불가결적이다. 인클로저운동, 증기기관혁명, 농촌의 도시화, 매뉴팩처 및 기계제 대공업 등의 등장과 함께 과학기술을 집약적으로 발전해가고 그것에 퇴행과 퇴보는 인간의 생애가 백발의 노인에서 엄마의 자궁 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것과 동일하게 불가능한 양태이다.
이러한 자본주의가 성숙하면 성숙해질수록 더 많은 세계화를 요구하는데, 다시 말해 영국과 유럽에서 시작한 자본주의의 물결이 전세계를 지배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러한 양태가 21세기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유일한 모습이기도 하니 이러한 논증은 그저 사변적 논증 그 이상을 지적한다. 자본주의의 세계화로 농촌은 도시화되고 2050년엔 전세계 인구 70% 가량이 도시에 살게 된다는 전망도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세계 사람들과 인프라를 연결시켜주고 인간 생활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자본주의 세계화는 어째서 그 한계점을 지니는가. 일본의 맑스주의 경제학자 사이토 고헤이는 자본주의 세계화의 한계점으로 '자연의 고갈'을 꼽는다. '자연' 개념은 맑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개념인데 여기서 그 철학적 테제를 설복하긴 힘들기에 가장 쉽게 말하면 '자연이 고갈되면 자본주의 생활 양식 또한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고헤이는 세계 국가들을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유지해가는 '글로벌 노스Global North'와 그러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지탱해주기 위한 주변부를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규정하는데, 예컨대 글로벌 노스의 경우엔 '미국' '일본' '한국'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 반열의 국가들을 생각하면 쉬울 것이고 글로벌 사우스의 경우엔 '인도네시아' '러시아 일부' '아프리카 대륙의 절반 이상' '브라질' '필리핀' 등 후진국 혹은 노동자원과 자연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을 연상시키면 쉬울 것이다.
자본주의 세계화의 기본적인 로직은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에서 자원을 수탈하여 그들의 제국적 생활양식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글로벌 기업들이 노동가치가 저렴한 동남아나 아프리카 국가들에 자신의 거점 공장들을 위치시키는 것과 산림이 풍부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값 싼 가격으로 산림자원을 '수탈'해오는 것, 아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미치지 못한 국가들에 '발전'과 '개발'을 실마리로 싼 값에 집약된 자원들을 수탈해 가는 것이다.
자본의 관점에서 이러한 지배관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허나 자본과 인간 모두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증상은 바로 수탈을 일삼을 공간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며 자본주의 인신세의 가장 주된 증상으로 발현된 '기후 위기'가 다시금 자연을 인류에게서 분리시키며 공포의 대상으로 전화되었다는 데에 존재한다. 성숙된 자본주의는 다시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노동의 양태를 변형시켜놓으며 자본주의 세계화를 방해하는 등 그것의 성숙도와 반비례하게 모순과 부정태들을 제공한다.
_재난 편승형 자본주의의 시대
자본주의 인신세의 문제적 양태들을 201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증폭되고 실현된다. 가령 앞서 언급한 '기후 위기', 이에 더해 세계화의 물결을 담지하여 퍼져나가는 '글로벌 팬데믹'은 우리의 감관 앞에 현실태로 다가오며 각인들을 물리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며 자본주의 세계화는 '기후 위기'시대와 '인수공통감염적 팬데믹 시대'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인류는 자본주의적 생활 양식을 추구한다. 학자들은 이러한 생활 양식을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라 부르는데, 이는 기후위기와 팬데믹과 같은 자본주의의 악영향 속 (초)부유층의 막대한 자본 유지를 위해서만 이해관계가 성립되는 생활 양식을 말한다. 다시 이러한 양태는 기후 파시즘주의와 합세하여 초부유층이나 기득권의 자본 획득이나 유지에 방해가 되는 사회그룹이나 방식들을 과감하게 배척해가며 극소수 부유층들만의 이해관계를 국가차원으로 형성하는 새로운 '오이코스적 국가'를 낳는가 하며 '중산층의 몰락' 또한 현실태로 정초한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확인된 백신과 제약 회사들의 자본 축적-미완성 및 불필요한 백신의 추가 접종을 국가 차원에서 강제하며 특정 사회계급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현상-, 법률 제정 시 약식명령에 의한 '벌금' 납부가 아닌 행정처분에 의한 '과태료' 납부 형태의 신 법률안 구축,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 뉴딜'을 표지로 한 지하자원 산업에 대한 막대한 인센티브 제공, 상부에서 하부로 전가되는 여러 재난들 속 일상생활 제약, 막대한 자본을 원활하게 이동시키기 위한 가상화폐와 NFT의 등장은 '개인주의' 시대와 맞물려 자본가와 노동가의 양극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허나 이러한 문제적 양태들의 동인에 대해 부르주아 계급만을 탓할 수는 없다. 노동자 혹은 비자본가 계급 또한 이러한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코로나 바이러스, 원숭이 두창 등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이 등장할 때 마다 비자본가 계급에게 있어 가장 궁금증과 관심을 자아내는 것은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의 관련주들이며, 자본주의적 오이코스 국가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기보다는 복종하고 국가적 회유책을 받아들이며 안주하는 형식으로 그들의 의식 수준은 연명한다. 즉, 이러한 문제적 양태들에 대해서는 맑스가 지적했던 것 처럼 '노동자 계급의 의식 수준이 국가와 사회를 정초한다'라는 테제는 명확하게 들어맞는다.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는 자본의 물신주의Fetischismus 이론이 현실화 되었음을 적나라하게 증명한다. 영화 '돈 룩 업'의 주된 스토리라인은 '계속하여 이러한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를 추구할 시 인류의 종착지는 어디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과론적으로 지구는 사멸하지만 인류(여기선 '부르주아'만을 뜻한다)는 종속한다.
_현실은 이상이고 이상은 현실이다
거대한 운석이 지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운석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은 100%. 허나 사람들은 저 위 하늘에 아무런 관심도 없으며 현실을 살아가기 바쁘다. 그 현실은 바로 엔터테이먼트 쇼를 보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각종 루머와 밈을 형성해내고, 운석 이슈를 통해 얼마나 큰 재미와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느냐인 것이다. 이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현재의 조류를 가장 잘 반영하는 양극화된 양상을 보여준다. 헤겔의 테제 "이상적인 것은 현실적이어야 하고, 현실적인 것은 이상적이어야 한다."는 이론과 실천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이론적 방법론이 실패를 맞이하는 순간이다.
우리의 현실은 물신화된 자본에 의해 이상으로 전화한다. 지속적으로 더욱 자극적인 도파민을 추구하며 더욱 더 많은 경제적 부와 더욱 더 많고 극대화된 효용성과 효율성을 추구한다. 맑스는 자본주의가 성숙기를 지나 충분히 성숙하여 극에 달한다면 삶의 양태가 변화할거라 예견했지만 현재 우리의 의식 수준은 맑스 당대의 사회와 문화의 의식 수준과 비슷하거나 동일하다. 여전히 무의식의 영역에서 주체성을 포기하며 부품화로 전락하고, 다음날 고된 노동을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을 표지로 자본에 의한 생물학적 지배까지 당하니 말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표현하자면 주체는 상징계에, 이성은 상상계에 상주한다.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는 그 간극을 좁히기보단 더욱 더 해리시켜 각인으로 하여금 자본주의의 부품으로 전락시키며 인간을 가축화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추상과 구체로 분리되어 '추상'은 자본에 의한 지배의 영역에, '구체'는 '추상'의 소외를 줄여나가기 위해 이상과 망상에 빠져 "현실적인 것이 이상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수많은 이데올로기에 둘러싸인 우리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상징계에 구멍을 뚫고 '그 이면Das Ding'을 바라보는 방법은 은폐되었다. 아버지의 법은 자본의 법으로 대체되어 연명한다는 것이 영화가 시사하는 논점이다.
이러한 현상이 우리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조류 속에 살기에 당연하고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어쩔 수 없는 양태들인가. 영화는 맑스의 철학관과 동일하게 이 점을 지적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동자 계급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즉 자본주의의 문제적 양태들과 증상들에 대한 책임은 계급과 직책과 성별과 인종 상관 없이 '법인'으로 상정되는 그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와 국가 그리고 문화의 수준은 각인들의 의식 수준에 담지한다. 이는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맑스가 기술한 바이며 재난 편승형 자본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각인들이 지속적으로 자신들에게 의식적으로 깨어있음을 요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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